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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13일 토요일 (제6호) 5면
서귀포 = 장승원 기자 jang@chosun.com

인터넷세상 품어버린 '한라산 흙가슴'

농부 이영상씨 "감귤향 그윽한 홈페이지 보셨나요?"

『허 참, 부끄럽습니다.
감귤 농사꾼이 뭐 아나요?
지성이 얘기라면 몰라도 제가 어쩌다가 만들어 본 홈페이지가 얘깃거리가 되나요.
어쨌든 참 신통하네요.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든지 한달만에 모르는 사람한테서 연락이 오질 않나, 컴퓨터로 편지가 오질 않나.』
 
한라산 중턱에서 감귤 농사를 지으면서 인테넷에 홈페이지를 올려 놓고 있는 별난 농군 이영상씨(45)는 제주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자신의 얘기는 할 것이 없다고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수아성」이란 독특한 이름의 홈페이지를 개설한 그가 인터뷰에 응한 것은 딸 지성이(6세)가 지난달 열린 '96 한국컴퓨터디자인 대전에서 「향단이와 방자, 그리고 삐빠」란 작품으로 청소년부 특선에 당선된 뒤였다.
 
이씨의 덜컹거리는 1톤짜리 소형 트럭을 타고 1시간 정도 제주 남쪽으로 달리니 서귀포시 외곽 한라산 외딴 기슭에 그의 감귤 농장이 나타났다.
 
감귤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으리란 예상과는 달리 4천평 남짓한 농장은 지금 한창 공사중이었다.
땅주인이 작년 가을 농장 부지를 농업진흥청의 제주감귤연구소에 팔았기 때문이다.
현재 이씨 가족은 다른 농장지를 알아보는 한편 새로운 농장주인 감귤연구소에 양해를 얻어 이사를 연기한 상태다.
 
이같은 사정으로 그의 가족들은 본의 아니게 지난해 12월 감귤을 수확한 뒤 긴긴 방학을 맞이한 형편이 됐다.
 
이같은 방학시간을 이용해 가족이 컴퓨터 공부를 했으며, 결국 아버지의 홈페이지와 딸 지성이의 컴퓨터 그래픽 작품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직장 집어치우고 "제주도로 가자"
지난 6월3일 인터넷에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올린 이씨는 원래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세일즈맨 생활을 했다.
 
제주도로 이주한 것은 지난 90년 9월.
 
쳇바퀴 도는 듯한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어느날 문득 『이렇게 사는 건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며 아내에게 『제주도에 가서 살까』하고 제안했다고 한다.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사흘 동안 몸져 누웠던 아내 이정주씨(36)는 4일째 되는 날 『갈 거면 지금 당장 가자』며 벌떡 일어났다.
이씨는 『아내 덕분에 이렇게 좋은 제주에서 살게 됐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무턱대고 내려온 제주는 공기와 경치는 좋았지만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한라산 중턱의 감귤 농장 4천평을 빌렸다.
『농장은 구했지만 비료창고만 달랑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살 집을 지었지요』
이씨 부부는 『그때 생전 처음 손으로 판 하수도가 아직도 쓸 만하다』고 했다.
작년 가을 방 하나와 수세식 화장실을 증축, 지금은 방3개에 15평 짜리 보금자리가 됐다.
그중 방 하나가 컴퓨터 작업실로 쓰인다.
 
신문 보고 싶어 컴퓨터 장만
『참 묘하죠.
4년쯤 지나니까 농사꾼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 이번엔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세상 소식이 자꾸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집이 워낙 외딴 곳이라 신문 배달이 안된다지 뭡니까.
하도 답답해 신문보급소에 가봤더니 이 사람들이 컴퓨터를 통해서 신문을 보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도 컴퓨터를 한대 장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괜히 샀다가 돈만 날리는」 실수를 피하기 위해 넉달 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드디어 지난 94년 9월 13인치 컬러모니터와 9,600bps 모뎀이 달린 매킨토시 LC475 모델을 장만했다.
이런 인연으로 한가족이 된 컴퓨터를 밤마다 PC통신에 접속해 신문 기사를 샅샅이 읽었으며 컴퓨터 지식도 하나하나 늘어갔다.
 
이씨는 『당시 네살이던 지성이를 생각해 그림 그리기 좋다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골랐는데 결국 지성이가 그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 컴퓨터디자인 대전에 당선됐다』며 자신의 탁월한 선택에 흐뭇해 한다.
 
지성이의 그림 그리기, 그리고 이씨의 신문 읽기에 주로 동원되던 컴퓨터는 지난 4월 처음 인터넷이란 신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PC 통신에 접속해 넷스케이프란 인터넷 검색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인터넷 구경을 한 이씨는 곧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한달 동안 PC통신을 통해 인터넷 구경을 하다 느린 속도가 성에 안 차 크리넷(Crenet)이 란 인터넷 접속 전문 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내친 김에 나도 홈페이지 하나 만들어볼까』 라고 생각한지 두달만에 그는 「수아성」으로 이름붙인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낸다.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한 컴퓨터 언어 HTML에 관한 교재를 여러권 사 봤지만 그보다는 PC통신의 「인터넷 문답」을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홈페이지의 편집 메뉴를 참고한 것도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저절로 홈페이지가 생겼다』고 겸손해 하는 그의 말과는 달리 「수아성」엔 지성이가 그린 천진난만한 그림들이 페이지마다 정성스레 채워졌으며, 다른 어린이의 그림을 올려 놓은 「어린이 세상」, 그리고 제주도를 외지인에게 소개하는 내용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다.
 
제주도 관광에 대한 코너를 별도로 마련한 이유에 대해 이씨는 『빡빡한 직장 생활에 쫓기는 도회지 사람들에게 제주도의 휴식공간과 놀이거리를 알려주고 싶어서』라며 『윈드서핑과 렌트카에 관한 자료를 추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달 제주시에서 열린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다.
그러나 빈 자리가 많아 선생이나 학생이나 모두 흥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아직 인터넷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공간 초월한 인터넷 위력 실감
이씨는 『내 홈페이지로 처음 전자우편(e-mail)을 받았을 때 인터넷이 공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며 『복잡한 도스 명령어를 몰라도 마우스만으로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TV를 보는 것처럼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의 꿈은 올해 새 농장으로 이사해 감귤농사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더욱 알차게 늘려나가는 것이다.
 
『수아성을 만들었다고 해서 내 생활에 변화는 없을 겁니다.
제주를 떠나고 싶지도 않고요.
앞으로 내 가정과 인터넷에 있는 수아성을 차근차근 알차게 일굴 겁니다』

 

「수아성」엔 사랑이 넘쳐요

딸이 그린 그림으로 화면 꾸미고 제주 자랑도 '한껏'

지성이는 작년 유치원 겨울방학 때 아빠와 함께 어린이용 그림 프로그램인 「Kid Pix」와 컴퓨터 편집 프로그램 「Quark XPress 」를 이용해 18장짜리 그림책을 한권 「출판」했다.
 
매킨토시 LC475로 그린 내용을 컬러프린터에서 B5크기로 인쇄했고 색깔 테이프로 제본해 유치원 졸업식 때 1년간 정든 친구 15명과 선생님에게 선물했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에 용기를 얻은 지성이는 지난 5월 그림을 다시 A4 크기로 수정해 '96 한국컴퓨터디자인대전에 출품했으며 청소년부에서 최연소로 특선에 뽑히는 영광을 차지했다.
지성이가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동안 아빠 이씨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홈페이지의 편집 메뉴를 모았고, 여기다 약간의 수정을 가해 '수아성'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지성이의 그림 가운데 한라산과 집이 보이는 것, 그리고 지성이가 두팔을 활짝 펴고 있는 것을 골라 초기화면에 올렸다.
『스스로 보아도 아직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만...』으로 시작하는 솔직한 소개의 글 옆엔 다른 홈페이지에서 따온 농부 그림도 덧붙였다.
 
지성이의 디자인대전 당선작인 「향단이와 방자, 그리고 삐빠」를 올리는 작업도 현재 진행중이다.
 
이씨가 살짝 보여준 지성이의 일기장엔 디자인대전에서 상을 받은 날 『꿈이냐 생시냐, 너무 좋아서 얼굴을 꼬집어 보았다』는 솔직한 당선 소감이 적혀 있었다.
 
지성이의 마우스 다루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생각이 떠오르면 마우스를 잡고 쓱쓱 움직이는데 금방 그림이 완성된다.
아빠와 딸은 그림동화책을 한권 만들어내기로 이미 손가락을 걸었다고 한다.
 
아빠 이씨는 『신문이나 방송 모두가 「인터넷, 인터넷」하고 외치지만 우리 가족처럼 외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마우스를 본 적도 없을 걸요』라며 『동네 어린이들이 컴퓨터로 그린 그림을 주제나 수준에 상관없이 홈페이지에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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