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성
8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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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mo Kang
22시간  ·

‘내 나이 30세. 6 25전쟁, 7년간의 소모적인 군대 복역을 강요당하고 나와, 남들보다 뒤늦게 의식의 눈이 뜨이기 시작한 청년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 헤매이던 때였다. ‘김산’의 삶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아리랑>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은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무슨 표현의 수단과 방법으로써도 다 그릴 수가 없다. 모색하다 지치고 좌절 때문에 실의했을 때는 김산을 찾았다.'

'유신독재 시절, 나는 이 책을 여러 사람이 읽도록 하기 위해 빌려준 뒤  한동한 소식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었다. 김지하, 김정남 등 수많은 젊은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며 헌 책이 되어 마침내는 박경리선생으로부터 다시 돌려받았던 감격은 집을 나갔던 자식이 돌아온 기쁨이었다..’이렇게 리영희 선생은 <아리랑>이라는 님 웨일즈의 소설에 관해 회상했다. 남한과 북한에서는 금서가 된 <아리랑>은 일본에서는 ‘세계명저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동북아의 역사를 만든 인물중의 하나인 김산의 첫인상을 저자 님 웨일즈는 아래와 같이 썼다.

‘훤칠한 키의 사내가 실내에 들이비친 광선 속으로 나타났다. 그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내 얼굴을 조용히 응시했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씨여서 창호지를 바른 창문으로는 충분한 빛이 들어오지 않아 우리가 앉은 자리는 컴컴했지만, 선명한 얼굴은 도무지 중국인 같지 않았다. 어찌 보면 거의 에스퍄냐인 같기도 했다.’

‘그는 '반란자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천만한 지하혁명운동을 하면서 살아온 그는 소박하고 침착했지만 자제력과 섬세함과 경각심을 겸비한 한편 멜랑콜리한 사내였다.  수척한 얼굴엔 표정이 풍부했지만 감옥생활로 각인된 창백함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총명하고 영채로운 눈매는 솔직하고 아량 있는 풍모를 드러냈다. 이 망명 조선인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가장 중요한 영혼 만큼은 잃지 않고 있었다'

‘김산은 근래 7년동안 동양에서 만난 가장 매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해 여름  원고를 쓰느라고 손가락 경련의 고통을 견디며,  대략 25명에 달하는 중국 혁명가의 자전을 쓰고 있었는데, 김산은 내가 만난 혁명가중에서도 남다른 특성이  있었다. 그와의 거듭된 만남을 통해 그의 인품을 만든 바탕을 이루는 것이  뭔가를 점차 알게 되었다‘

‘그는 두려움을 모르는 투지와  불굴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견해는 명철하고, 주장은 단정적이었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주도 면밀한 사고를 거친 견해였고, 사려 깊은 추리를 통해 검증된 주장이었다. 그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사물에 대한 관찰력을 바탕한 세계관과  문제의식을 겸비하고 있었다.‘

‘예절이 바르며 경건한 모습이 마치 수도자 같았지만, 승려에게서는 보기 힘든 불굴의 투지가 있었다. 중국 혁명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던  그는 동양 현대사의 참상과 대재앙의  불길속에서 단련된 사내였다.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부식당하거나 타락되지 않은 사람이었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운명과 의연하게 맞섰던 인물이었다’  

‘중국어에 유창한 그는 언어재능이 남달랐다. 영어발음이 애매하여 처음에는 애를 먹었지만 어휘는 매우 풍부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언어에 함몰된  노예가 아니었다. 망명 혁명가답게 그는 국외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각도의 관찰력으로 극동의 역사를 만화경처럼 재미있게 그려내어 나를 매료시켰다'

 ‘그는  피비린내나는 극동 현대사에 용감하게 뛰어든 인물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이상주의적인 시인이 들어앉아 있었다. 그는 현실에 대한  환멸을 느꼈으나, 냉소자는 아니었다. 인간의 속성을  객관적으로 꿰뚫어 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변화와 진보를 믿는 사람이었다. 망명 조선인 김산은 모든 것을 다 잃었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영혼’ 만큼은 잃지 않고 있었다‘

김산은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 평양의 숭실중학을 다니다가 3?1 만세 시위로 퇴학당하자 15세의 나이에 혹독한 만주 벌판 700리를 걸어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 졸업했다. 상해로 가서 안창호와 이광수 밑에서 <독립신문> 식자공으로 일했다. 북경의 의학원에 입학해 의학도가 된 뒤에 김성숙의 영향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공부가 깊어져 초기 중국공산당  당원이 되었다.

당시의 많은 독립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중국공산당 편에서는 것이 조국독립을 앞당기는 것이라 믿었다. 그 뒤 김산은 아나키스트 오성륜을 만나  의열단 동지들이 폭탄을 던지고 초개같이 죽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방대한 독서량과 명석한 두뇌 덕분에 중국공산당 창당의 산파역을 한 이대쇠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겼던  나이가 겨우 스무 살이었다.

일제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중국 공산당으로 부터 죽임을 당했을 때의 나이는 불과 서른 셋이었다. 다음은 님 웨일즈에게 남긴 진술중의 몇귀절이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 또한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오직 나 자신에 대해서만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산의 아리랑 464쪽)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옛 노래다.. 서울 근처에 아리랑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조선왕조의 압제하에서 이 소나무는 수백년 동안 사형대로 사용되었다.. 대다수는 압제에 항거한 빈농이거나 청년 반란자들이었다. 이런 젊은이 중 한 명이 옥중에서 작곡한 노래를  아리랑고개의 형장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60~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