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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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 Kim
5시간  ·

《白凡逸志백범일지 5》
<첫 번째 투옥_ 치하포 의거(하)>
: 고종이 김구를 살리다

나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다른 죄수들이 나를 위하여 슬퍼해주는 정황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음식을 얻어먹은 죄수들이며 글을 배운 제자들, 그리고 나한테 솟장과 송사에 대한 지도를 받아오던 이들이 통곡을 했다. 그 모습은 흡사 그들이 자기 부모상을 당해도 그러하였을까 의심하리만큼 간절하였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오후를 지나고 저녁때가 되었다. 교수대에 끌려 나갈 시각이 바싹바싹 다가왔다.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질 순간까지 성현의 말씀과 동행하리라 마음먹고, 몸을 단정히 하고 앉아서 <대학>을 읽었다. 그럭저럭 시간은 지나고 저녁밥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내가 특별한 죄수라서 밤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예기치 아니하였던 저녁 한 끼를 이 세상에서 더 먹은 것이었다.

밤이 초경初更을 넘어섰다. 이 때 밖에서 여러 사람이 떠들썩하고 가까이 오는 인기척이 나더니 옥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때가 왔구나!”

나는 나지막하게 소리를 내고 이제부터 닥칠 운명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한방에 있던 죄수들은 자기가 죽으러 나가기나 하는 것처럼 모두 얼굴색이 변하여 벌벌 떨고들 있었다. 이때 문밖에서,

“창수, 어느 방에 있소?”

“이 방이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미처 방문도 열기 전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구, 이제 창수는 살았소! 감리 영감을 비롯한 전 서원, 그리고 각 청 직원이 아침부터 밥 한술 목 먹고 끌탕만 하고 있었소. 창수를 어찌 차마 우리 손으로 죽이느냐고……. 그런데 지금 막 대군주 폐하께옵서 전화로 감리 영감을 불러 김창수 사형은 정지하라는 칙명을 내리셨소. 그러자 감리 영감에게 이 기쁜 소식을 당장 창수에게 알리라 하여 이렇게 달려왔소. 오늘 얼마나 상심하였소?”

이 때가 병신丙申년 8월 26일이었다. 뒤에 알고 보니 내가 사형을 면하고 살아난 데는 두 번 아슬아슬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러하였다.

법부대신이 내 이름과 함께 몇 사형 죄인의 명부를 가지고 입궐하여 상감의 칙재를 받았다. 상감께서는 다 재가를 하였는데, 그때에 입직하였던 승지 중의 한 사람이 내 죄명이 ‘국모보수國母報讐’인 것을 발견하고 이상하게 여겨서, 이미 재가 된 안건을 다시 가지고 어전에 나아가 임금께 올렸다. 상감께서는 나의 죄명을 읽으시고 즉시 어전회의를 여시었다. 그 결과 내 사형을 정지하도록 결정하고 곧 인천 감리 이재정을 전화로 부르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승지의 눈에 ‘국모보수’ 네 글자가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나는 예정대로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둘째로는 전화가 인천에 통하게 된 것이 바로 나에 대한 전화가 오기 사흘 전이었다. 만일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화 개통이 되어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상감께서 은명을 내려 나를 살리려 하셨더라도, 이미 때는 늦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 우리 관원뿐 아니라 인천항내의 객주客主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통문을 돌렸소. 김창수의 처형장인 우각동으로 엽전 한 냥씩을 가지고 모이자. 그 돈을 모아서 김창수의 몸값을 치루고 그를 살리자. 그것만으로 부족하거든 전 물객의 상주들이 부족액을 내기로 의견을 모았었소. 그런데 이제 천행으로 살아났소. 며칠 안으로 궐내에서 은명이 계실 터이니 아무 염려 말고 계시오.”

감리서 주사가 이 말을 하고 돌아갔다. 그제야 나는 분명히 사형을 면한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눈서리가 날리다가 갑자기 꽃소식의 봄바람이 부는 것과 같았다. 옥문이 열리는 소리에 벌벌 떨고 있던 죄수들은 내게 전하는 이러한 소식을 듣고 좋아서 죽을 지경인 모양이었다.

신골방망이로 차꼬를 두드리면서 온갖 노래를 다 부르고 푸른 바지에 저고리 차림으로 얼씨구나 좋구나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춰댔다. 그것은 마치 푸른 옷을 입은 배우들의 연극장과도 같았다.

죄수들은 내가 그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태연자약한 것은 이렇게 무사하게 될 줄을 미리 알았던 것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했다.

또한 나는 이인異人이라 하여 앞의 일을 내다보는 사람이라고들 떠들었다. 더구나 어머님은 갑곶이 바다에서,

“저는 안 죽습니다.”

하던 말을 기억하시고 내가 무엇을 아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시는 모양이었고, 이 말씀을 들은 아버님도 그런 생각을 가지시는 것 같았다.

대군주의 칙령으로 김창수의 사형이 정지되었다는 소문이 전파되자 어제 와서 영결을 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조문이 아니요, 치하하려 밀려왔다. 하도 면회인이 많으므로 나는 옥문 안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몇 날 동안 응접을 하였다.

전에는 다만 나의 젊은 의기를 애석하게 여기는 것뿐이었으나, 칙명으로 내 사형이 정지되는 것을 보고는 멀지 않은 날에 상감의 부르심을 받아 높은 벼슬을 얻게 되리라고 지레 짐작하고 벌써부터 내게 아첨하는 사람조차 생기게 되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