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성
5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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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 Kim
2일  ·

《白凡逸志백범일지 3》
<첫 번째 투옥_치하포 의거 (상)>

김 경무관은 청상에 앉아 차례대로 성명, 주소, 나이를 물은 뒤에, 모월 모일 안악 치하포에서 일본인 하나를 살해한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있소.”

나는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 일인을 왜 죽였느냐? 그의 재물을 강탈할 목적으로 죽였다지?”

김 경무관이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이때다 하고 없는 기운이지만 소리를 가다듬어, “나는 국모 폐하의 원수를 갚으려고 왜놈 원수 한 명을 때려죽인 일은 있으나, 재물을 강탈한 일은 없소.”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청상에 늘어앉은 경무관, 총순, 권임 등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나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순식간에 법정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그 때 옆 의자에 걸터앉아서 신문을 방청하는지, 감시인지를 하고 있던 일본 순사(뒤에 들으니 와타나베라 한다)가 놀란 눈으로 정내를 둘러봤다. 그러다가 법정안의 공기가 수상한 것을 느꼈는지 통역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죽을힘을 다하여,

“이노옴!”

하고 벼락을 내렸다. 그런 후 말을 이어, “소위 만국공법 어느 조문에 통상 화친하는 조약을 맺고서 상대방 나라 임금이나 왕후를 죽이라고 하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감히 우리 국모 폐하를 살해하였느냐? 내가 살아서는 이 몸을 가지고,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맹세코 너희 임금을 죽이고, 너희 왜놈들을 씨도 없이 몰살하여 우리나라의 치욕을 씻고야 말 것이다.”

하고 소리를 높여서 꾸짖었다. 그랬더니 와타나베 순사는 겁을 먹었던지, “칙쇼, 칙쇼” 하면서 대청 뒤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칙쇼’는 짐승이란 뜻으로 일본말의 나쁜 욕인 것을 나중에 들어서 알았다. 법정안의 공기는 더욱 긴장감이 돌았다.

배석하였던, 총순인지 주사인지 분명치 아니하나, 한 관원이 경무관 김윤정에게 말했다.

“사건이 심히 중대하니 감리 영감께 아뢰어 친히 신문하게 함이 마땅하겠습니다.”

김 경무관도 고개를 끄덕여 그 의견에 동의했다. 나는 이 감리사가 나의 신문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를 향하여 입을 열었다.

“나 김창수는 시골의 한낱 천한 몸이다. 그렇지만 국모 폐하께옵서 왜적의 손에 무참히 돌아가신 국가의 수치를 당하고서는 청천백일 하에 내 그림자가 부끄러워서 겨우 왜구 한 놈을 죽였지만, 아직 이 나라의 사람으로서 왜왕을 죽여 국모 폐하의 원수를 갚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제 보니 당신네가 국상으로 몽백을 하고 있으나, 춘추대의에 임금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는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한갓 일신의 영달과 관록을 도적질하려는 더러운 마음으로 임금을 섬긴단 말인가?”

나의 이 말에 감리사 이재정, 경무관 김윤정 기타 단상에 있는 관원들은 모두 낯을 붉히며 고개를 수그렸다. 모두 양심은 있어서 찔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내 말이 다 끝난 뒤에도 한참 잠자코 있던 이 감리사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마치 내게 하소연하는 것과 같은 목소리로,

“창수가 지금 하는 말을 들으니 그 충의와 용감함을 흠모하는 반면에, 황송하고 참괴한 마음이 비길 데 없소이다. 그러나 상부의 명령대로 신문은 하여 올려야 하겠으니 사실을 상세히 공술해주시오.”

하고 경어를 썼다. 이 때 김 경무관이 내 병이 아직 위험 상태에 있다고 이 감리사에게 수군거렸다. 그러자 이 감리사는 옥사쟁이에게 명하여 나를 옥으로 데려가라고 명했다.

내가 옥사쟁이의 등에 업혀 나왔을 때, 많은 군중 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그 얼굴에 희색이 돌고 있었다. 나는 아마 군중이나 관속들에게서 내가 관청에서 한 일을 듣고 약간 안심하셨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어머니한테서 들은 얘긴데, 그날 내가 신문을 당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어머니는 옥문 밖에 와서 기다리셨다 한다. 그러다 내가 업혀 나오는 꼴을 보시고, 저것이 병중에 정신이 없어 잘못 대답하다가 당장에 맞아 죽지나 않나 하고 무척 근심하셨다 한다.

“이 사람은 다른 죄수와 다른데 왜 도적 죄수와 같이 둔단 말이냐. 즉각 이 사람을 다른 좋은 방으로 옮기고 일체 몸은 구속치 말고 너희들이 잘 보호하렷다.”

이 후부터 나는 옥중에서 왕이 되었다. 이런 지 얼마 후에 어머님이 면회를 오셔서 초췌한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말씀하셨다.

“아까 네가 신문을 받고 나온 뒤에 김 경무관이 돈 150냥을 보내며 네게 보약을 사 먹이라 하였다.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는 집의 집주인 내외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방 손님들까지도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 하여 나를 매우 존경하고 있다. 그들은 옥중에 있는 네가 무엇을 먹고 싶어 한다면 기꺼이 마련해주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니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여라.”

어머니의 그 말씀을 들은 나는 천지가 아득하기만 했다.

내가 아홉 사람의 발목을 넣은 큰 차꼬를 한 발로 들고 일어났다는 것은 이화보를 여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다. 그가 잡혀 와서 고생을 하는 사유가 살인한 죄인을 놓아 보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밥 일곱 그릇을 먹고 하루 7백 리 가는 장사를 어떻게 붙잡느냐는 그의 변명의 말이 오늘에야 증명이 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튿날부터는 나를 면회하고자 하는 사람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감리서ㆍ경무청ㆍ순검청ㆍ사령청의 수백 명 관속들이 나에 대한 홍보를 했기 때문이었다. 인천항에서 세력이 있는 사람 중에도, 또 막벌이꾼 중에도 다음 번 내 신문 날에는 미리 알려달라고 아는 관속들에게 너도나도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