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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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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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칼럼] 구한말 전봉준 때려잡은 조선관료들 그리고 2023년의 더탐사에 대한 탄압

'전봉준 공초'를 읽다가 서광범이라는 구한말 고등재판소장이 전봉준 장군을 신문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한말 관료들의 민중봉기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듯 서광범은 전봉준을 시정잡배 바라보듯 신문했다.

-서광범: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전봉준: 전봉준(全琫準)이다.
-서: 왜 난을 일으켰느냐?
=전: 어찌하여 날보고 난을 일으켰다 하느냐? 작란(作亂)을 하는 것은 바로 왜놈에게 나라를 팔아먹고도 끄떡없는 부패한 너희 고관들이 아니냐?
-서: 관아를 부수고 민병을 일으켜 죄없는 양민을 죽게한 것이 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전: 일어난 것은 난이 아니라 백성의 원성이다. 민병을 일으킨 것은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함이요 백성의 삶에서 폭력을 제거코자 했을 따름이다.
-서: 그리하면 지방의 방백수령을 혼내주면 됐지 왜 서울에 입성코저 했는가?
=전: 국체를 무시하고 궁궐을 침범한 왜놈들을 응징코자 한 것이다.

다시 봐도 피가 거꾸로 솟는 신문이 아닐 수 없다. 일제의 침략과 조선말 부패 정권에 항거하고자 일어난 위대한 민중운동에 대해 당시 조선 관료들의 시선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온다.

그러다 다시 내 눈에 서광범이란 이름이 띄었다.

서광범??? 잠깐만. 이 이름은 박영효 서재필 등 갑신정변의 주역으로 내가 고등학교 국사책에서 암기했던 그 인물 아닌가.

'근대문물을 도입해 기울어져가던 나라의 힘을 되살려보자' 했다던 그 갑신정변의 서광범이 의병 전봉준 장군의 처형에 가담했어? 심지어 의병들을  멸시하듯 바라보고 신문했었네? 왜 내가 이걸 몰랐을까. 서광범을 갑신정변의 주역으로만 기억하고, 전봉준 장군을 처형하는 데 앞장선 천하의 나쁜놈으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건 당연히 우리의 잘못된 역사 교육 탓이 크지 않나. 그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이름만 줄줄 외기 바쁘고 그 사건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 고민은 생략해버리는 그런 역사교육 말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저런 구한말 의병들을 잡아족친 조선관료들을 개화파로만 기억하고, 그 개화파들이 끝내 친일파가 되어 나라를 팔아먹는 데 일조한 걸 잊어먹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협회를 만든 자가 이완용이라는, 다소 황당하지만 친일파 상당수가 본디 변절자라는, 그 사실을 까먹고 사는 일들은 그래서 벌어진다.

또하나의 원인이 있다. 원래 역사적 격변기에는 누가 나라를 팔아먹는 놈들인지 당시에는 명확하지 않다. 다들 각자의 행위가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광수가 "대동아 전쟁에 참여하자"고 조선 청년들에게 글을 썼을 때 자신을 친일파라고 생각했을까? 서광범이 전봉준 장군 사형판결할 때 자신의 행위를 친일이라고 생각했을까? 독립협회를 만든 이완용이 처음에는 자신을 개화파라 생각했지 친일파라고 생각했겠느냔 말이다. 친일파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친일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당시 대중들도 깜박 생각 속아넘어갔을 것이다. 마치 윤석열 아버지는 일본 유학파일 뿐 친일파는 아니라고 지금의 우리 사회가 속아넘어가는 것처럼.

'130년전 구한말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선 의병들을 때려 잡은 건 일본이 아니라 구한말의 조선 기득권 세력'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 나니, 2023년의 오늘 우리 사회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2023년의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을 결코 친일파라 말하지 않고, 제법 양심적으로 보였던 지식인들조차 시민들의 위대한 행동을, 자신들이 주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은근히 멸시하고 깔본다. 130년 전 조선 사회랑 똑같다. 동학을 가짜뉴스 취급하던 130년전 그 조선 기득권들의 시선 말이다.

<더탐사>가 '일본과 IAEA 사전 밀약으로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출 의혹'을 제기하자, 이를 가짜뉴스로 매도하는 건 일본뿐 아니라, 되레 윤석열 정부와 국내 언론들이 더 적극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 고위 외교 관리였던 반기문이 나서서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의 방문에 항의한 (민중들의) 행동은 국제망신"이라고 떠든다. 민주당 수박의원들과 국민의힘은 마치 조선 개화파 관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친일하려는 게 아니라 일본과 협력해 미래로 나아가려는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겨레 등 진보언론들은 <더탐사> 와 함께하는 촛불 시민들의 투쟁이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마녀사냥 당하고 있는 걸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어떻게 130년 전 구한말 기득권 세력의 '자발적 친일 행동'과 2023년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들의 행동과 말들이 이렇게도 유사할 수 있는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 못막을 바에야 이웃국가끼리 잘 지내는 게 국익" 이라는 논리는 "어차피 일본의 조선 지배 못막을 바에는 그 힘을 이용하는 게 낫다"는 구한말 조선 지식인들의 안일한 태도를 떠올린다. 의병 전봉준 장군의 처형에 분개하지 않고, '그래도 사회 개혁은 우리같은 지식인들이 해야지 글도 제대로 모르는 민중들이 무슨' 이러면서 있었을 조선말 지식인들과 2023년 한겨레 등 진보 지식인들이 보이는, 더탐사를 유튜버로 깎아내리는, 그런 모습이 어쩜 이리 유사한가.  

구한말 의병들을 때려잡은 게 일제가 아니라 조선 기득권 세력이었다는 걸 잊지 말자. 일제에 항거하던 조선 민중들을 무모한 싸움이라며 방치한 게 소위 한 때 독립협회 어쩌고 떠들며 활동하던 조선 기득권 지식인들임을 잊지 말자. <더탐사>의 보도를 폄훼하고 처벌에 나서려 하던 자들이 어떤 세력인지 잊지 말자. 당시 조선 민중들이 기득권 세력들에 놀아나 전봉준 장군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던 것처럼 똑같은 오류를 범하면 안된다. 다행인 건 깨어있는 시민들의 단결된 힘은 130년전보다 훨씬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