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성
16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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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
7월 1일 오전 4:01  ·

시군구에 하나씩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하는 지혜의 숲이다.
정문을 통해 카운터를 지나치면 만나는 통로 양켠에 들어선 서가는 키 큰 메타세콰이어 숲 길을 걷는 청량함을 준다. 감춰져있던 머리 뚜껑이 열리고 저절로 수많은 책 속에 박힌 글자들이 날아와 담기는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 왼편 서가, 가장 눈길이 가는 높이에 꽂힌 벽돌 책의 위용이 장엄한데 바로 승정원일기다.
기구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조선 초의 것은 소실되고 전해지는 건 인조 1년(1623)에서 순종 4년(1910)까지 287년 정도 분량이다. 그런데 소실된 약 200년간의 기록이 사라졌음도 1994년 시작된 번역이 2064년경에나 완료될 예정이다.

기증된 승정원일기 번역본은 인조, 영조, 정조였다.
선조와 함께 최악의 암군으로 꼽히는 인조, 조선의 부흥을 이끌었던 애민(愛民)군주 영조 그리고 명군으로 추앙받던 개혁군주 정조의 기록인 것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승정원일기의 역사적 가치는 번역이 완전히 끝난다면 조선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는데 있다.
야사로 전해지거나 부실했던 사료로 추측이 난무했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후대 왕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조선왕조실록에서 왜곡한 사실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승정원 일기는 지금의 대통령 기록물이다.
조선시대 290년 동안 조정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내는데 100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반해 21세기 한국 청와대에서 오갔던 대화가 세간에 알려지는데는 불과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촛불시민에 대한 역모"란 말은 적확하고도 뼈시린 표현이다. 절로 어금니가 다물어지고 심장 박동이 요동쳤다.
조국 장관의 낙마 이후 검찰개혁의 중책을 맡아 고군분투하던 추미애 장관의 사퇴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였고 이낙연의 모사(謨事)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것도 현재의 난국과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검찰총장의 징계를 다루는 시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추미애를 믿지 않았다. 믿어서는 안된다고 되뇌었다. 노무현의 탄핵을 주도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그가 경선 후 보여준 진심과 열정이 나를 돌려세웠다.

세간의 소문을 믿지 않았다. 문재인이 실은 윤석열의 뒷배라는 추문, 추미애의 사임이 문재인의 지시였다는 주장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친구이자 새로운 시대를 끌어오는 마중물로 여겼다. 그런데 마중물은 국민이 아닌 윤석열의 시대를 열기위해서였고 이낙연을 위시한 구(舊) 민주당의 비루하고 야비한 작태에 동조한 결과였다.

문재인은 윤석열의 범람을 방조함으로써 5년간 공들여 쌓았던 둑이 무너지게 했다. 지금 그 구정물에 국민이 압살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책으로 누구를 계도하고 서점으로 무엇을 막으려 드는가.

이제서야 실타래가 풀린다. 잊혀지고 싶다면서 잊혀지고 싶지않았던 이유를, 변질된 문파의 비루한 작태를 방조할 수 밖에 없는 그 기막힌 사연을 말이다.
나는 오늘부로 문재인을 노무현의 친구로 여기지 않겠다. 노무현이 목이 쉬도록 외쳤던 "깨어있는 시민"의 간절한 바램을 무참히 깨뜨린 사람은 감히 그의 친구가 될 수 없다.

나는 촛불을 들었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전직 대통령 문재인을 소환해 탄핵한다.
당신은 영조를 닮으려 했는가 아니면 정조를 꿈꾸던 인조였던가.

디지털시대의 승정원일기는 소실되지도 않거니와 밝혀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역사의 오라는 누구도 피해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