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성
8시간  ·
공유 대상: 전체 공개

김종대
어제 오후 12:43  ·

그들은 대북 구상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나

예상대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상대할 일이 없을 것”이라며 거부했다. 광복절 경축사가 발표될 무렵부터 예상된 일이다. 게다가 처음도 아니다. 이 담대한 구상은 김태효 대통령실 안보실 1차장이 이명박 대통령시절 만들었던 ‘비핵개방 3000’, ‘그랜드 바게닝’의 진화된 버전이다. 김태효 비서관에게는 배가 고픈 북한에 맛있는 음식 냄새를 솔솔 풍기면 북한의 정신이 혼미해져서 끌려올 것이라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런 잘못된 가정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과 마찬가지로 변함없다. 동물이라면 그런 방식으로 무너질지 모르겠으나 사람은 다르다. 핵을 포기하라는 조건을 내걸고 결국은 주지도 않을 음식 냄새를 풍기면 당연히 북한은 분노한다. 그런 식으로 북한을 잘못 관리해서 북한에 대해 비핵과 개방은 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천안함과 연평도라는 전대미문의 안보위기를 초래했던 책임자가 바로 김태효 당시 대외전략비서관, 지금의 안보실 1차장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담대하다고 말하는 구상에서 희망보다는 위협을 느끼게 된다. 묻고 싶다. 국민에게 극심한 고통을 강요하는 안보위기를 예방할 자신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남북관계의 역설이다. 사람들은 북한에 대규모 지원을 하겠다는 데, 이것이 왜 안보위기를 초래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런 지원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도 있었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도 북한은 경제협력을 먼저 하자는 남측의 제안에 선을 그었다. 정치·군사 문제, 즉 안보문제가 우선이라는 거다. 그래서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서가 나왔다. 그러고도 남북대화가 1년 만에 단절되었다. 그 무렵 나는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 경제 일군들과 장시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가 길어지면서 문득 “아, 이들은 더 이상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과 같은 남북 경제협력을 원하지 않는 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사실 햇볕정책 시절의 남북 경제협력은 난개발식 경제협력이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외에도 안 해본 것이 없다. 농업 종자 지원, 의료 협력, 자동차 조립, 특산물 수입, 예술 단체 교류, 학술 행사, 마라톤 대회 등등 벌리기는 엄청 벌렸다. 그런데 제대로 성과를 거둔 건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거다. 지속성이 없는 일회성 행사, 단기 이익에 집착하면서 성급하게 일만 벌였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북한 경제는 장성택 시절에 중국화되었다. 아태 평화위 관계자는 “평양의 가장 큰 백화점이 중국 것”이라며 광산과 유통까지 대부분의 경제 분야에 중국이 진출하는 마당에 “남측과 할 사업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고 털어 놓았다. 만약 북한이 비핵·개방을 하여 외부에 경제적 문호를 개방한다면 그 상대는 중국이지 왜 남한이겠는가.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는 남한의 기업가들보다 장기적 이익을 도모한다는 소위 중국의 '인내 자본(patient capital)'이 북한에게는 더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준비해 왔다. 중국의 우다웨이 한반도 특별사무 대표가 한국에 왔을 때 그는 “우리는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위한 자금과 기술을 준비해 놓았다”고 내게 직접 설명하였다. 단지 북한 핵문제로 인한 국제제재와 북한 측의 비협조로 투자가 지연되고 있을 뿐이다. 단 아태 평화위 관계자 말대로 북한이 남 측과 협력한다면 “미래에 돈이 되는 것”, 즉 남측이 우수한 첨단 제조능력과 반도체와 같은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것에 관심이 더 많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게 북한의 이야기였고, “이런 협력이 남측의 청년 실업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넌지시 말을 건네 왔다.  

그런데 김태효 차장의 발명품인 담대한 구상은 도대체 어느 시절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그가 대북 정책을 쥐락펴락하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분명 북한은 남북대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시기였다. 그것이 바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쌓아올린 성과요 자산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는 기대에 갇혀 북한을 살살 약 올리는 협상, 북한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을 골라서 하다가 되치기 당한 게 안타까운 생명이 스러져 간 2010년의 안보사태 아니었냐는 거다. 결국 평화를 위한 소중한 자산을 다 소진시킨 일종의 자본 잠식상태를 만들어 놓고 안보 위기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던 그들이다.  

더 심각한 건 북한과의 ‘차이’를 ‘차별’로 바꿔놓고 북한에 당한 화풀이를 국민에게 해댄 종북몰이는 덤이었다. 민주주의 파괴를 불사하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우월감 속에서 존재감을 느끼려한 정신적 불치병이다. 그가 국군 심리전부대에 댓글 공작에 관여하며 “우리 사람들 뽑으라”고 일종의 정치조직을 결성하도록 사주했다. 그 심리전 부대는 댓글 공작원에게 “어떤 표현도 구애받지 말고 구사하라”고 지시하여 온갖 적대와 혐오의 표현으로 공적인 온라인 공간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 바로 그들이 오늘날 평화로 포장된 구상을 말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방치하게 되면 올 가을에는 한반도에 이명박 대통령 당시와 유사한 안보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 만일 그런 상황이 온다면 이번에는 단단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