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아성
어제 오후 6:38
·
공유 대상: 전체 공개
전우용
즐겨찾기
· 어제 오후 4:24 ·
우리 앞의 위기와 이재명
대통령 선거 때면 언론사들은 으레 ‘우리
정치가 해결해야 할 우선적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처지와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많은 사람이 남북대결 구도,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 이념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 젠더갈등
등을 꼽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오래된
문제이자 겪어본 문제입니다. 아마도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것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문제,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배울 수
없는 문제들일 겁니다.
첫째는 기후위기입니다. 17세기에도 ‘소빙기(小氷期)’로
인한 재해가 있었다는 학술적 견해가 있지만,
현재의 기후변동은 범 지구적 산업화의 결과라는
점에서 인류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문제입니다.
기후변동이 어떤 재난들로 이어질지는, 아직
겪지 않았기에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대규모 지각변동과
생태계의 변화, 새로운 질병의 만연 등을 경고해
왔습니다. 지금 인류를 고통 속에 몰아넣은
신종 바이러스가 기후변동과 전혀 무관하다고
단언하기도 어렵습니다. 세계에서 산업시설의
밀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기후변동 대처와 관련해 상응하는 부담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담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가 또 다른 문제로 부각될
겁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환경뿐 아니라,
경제, 외교, 의료, 복지, 치안 등 사회의 모든
부면에 관련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류의 지성 및 양심과 연대하여 명료한 논리로
세계와 대화하면서, 이제까지의 관행과 새로운
의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무식한 사람, 알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 무속적
판단에 의존하는 사람은 결코 이 어려운 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둘째는 자동 기계화입니다. 기계화는 산업혁명
이후 상시적으로 진행되었지만, 현재의 문제는
그 속도와 범위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정도인
데에 있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현상이 본격화한 19세기 초,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공장에 뛰어들어 기계를 부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기계는 부술 수 있었지만, ‘기계 생산
시스템’까지 부술 수는 없었습니다. 역사상
사람이 기계와 싸워 이긴 예는 없습니다. 기계
생산 중심의 경제는 본래 ‘사람다운 속성’들을
무가치하거나 비생산적인 것으로 취급합니다.
기계는 사람보다 정확하고 사람보다 빠르며
사람보다 부지런합니다. 기계의 초인적(超人的)
능력과 발전 속도에 대한 두려움은 때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공포의 근저(根底)에는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기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만 할 수 있던 일과 기계도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경계는 아주 빠르게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2019년 OECD는 자동화로
인해 현존 직업의 최소 14%가 소멸 위험에
처했으며, 32%는 급진적 변화에 직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활동’의 경험까지 축적됨에 따라, 직업 세계의
변화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을 것입니다.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과 당장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 사이의 물질적, 정서적 격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시장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언제나 잔인하고 난폭했습니다. 시장의
잔인성을 억제하려면, 세심하고 정교한 국가의
공적 개입이 필수적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 이하라도 사 먹는 게 당연하다거나
노동자는 주 120시간이라도 일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2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지배한 시대가 혁명과 내란의 시대였습니다.
산업구조가 변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잃은 건
일자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까지 잃곤 했습니다. 물론 사라지는
직업이 있는 반면, 새로운 직업도 생길 겁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과 마음은 그 변화에 곧바로
적응하지 못합니다. 직업은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피는 못 속인다’가
중세의 인간관이었다면, ‘직업은 못 속인다’는
근대와 현대의 인간관입니다. 급속한 기계화
시대에 사람들의 자존감을 지켜 주면서 산업구조를
바꾸어 나가려면, 수준 높은 지식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기계에 일자리를 뺏길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라야 대통령
자격이 있습니다.
셋째는 인구 감소입니다. 우리나라의 출생아수는
1957년부터 1971년까지 매해 100만 명을 웃돌다가
1972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40만 명대를 유지하던 출생아수는
최근 급격히 줄어들어 2019년 30만 2천 여
명, 2020년 27만 2천 여 명, 2021년 26만 3천
여 명을 기록했습니다. 전체 인구는 2020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산에 대한 개인들의
태도도 장기 지속되는 문화 현상이기 때문에
이 추세가 갑작스럽게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20년 뒤부터는 매년 100만
명 넘게 태어났던 베이비붐 세대의 사망이
본격화하여 매년 70만 명 이상씩 인구가 줄어들
겁니다.
인구 감소가 축복이냐 저주냐를 두고는
견해가 대립하지만, 걱정은 먼훗날의 일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인구 감소는
곧 국내 시장의 축소를 의미합니다. 작년 초등학교
신입생은 43만 명이 넘었으나 6년 후에는 27만
명이 됩니다. 현재 국군 총병력은 55만 여명이지만
20년 뒤에는 25만 명을 넘을 수 없습니다.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작년부터는 지방 국립대학들조차 정원
미달 사태를 빚었습니다. 학교 교사 일자리야
학급당 학생 수를 줄임으로써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다 해도, 어린이 청소년과 관련된 일자리는
급속히 줄어들 겁니다. 우리나라처럼 사교육
시장이 크고 관련 일자리가 많은 나라에서
어린이 인구의 감소는 사회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보습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장,
무용학원, 입시학원 등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현재보다 반으로 줄어든 시장을 두고 서로
경쟁해야 합니다. 충격을 받는 시점에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분야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는 존재이지만,
적응을 위한 변화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현재의
인구 감소 속도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역시 시장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구, 가족,
산업, 지방자치, 외교 등 다방면의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한 국가 차원의 대응이 절실한
문제입니다.
해방 직후 역사학자 손진태는 민족 공동체의
앞날에 관해 “단결하면 흥하고 분열하면 망한다.
평등하면 단결하고 불평등하면 분열한다”라고
했습니다. 공동체 내부의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공동체의 안정성은 약해집니다. 극심한 불평등은
종종 내란이나 혁명으로 이어졌고, 외부의
압력에 취약한 상황을 조성했습니다. 불평등의
심화는 자체로 공동체의 위기였습니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수정 단계에서부터
사람들의 신분이 나누어지는 미래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황혼의 반란」에서 젊은이들이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암살하는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직업 가진 인간과
직업 없는 인간으로 나뉘는 세계는 이미 상상보다
현실에 가까운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직업
가진 사람’과 ‘직업 없는 사람’이 각각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사람’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나뉘어 분립하는 상황은 공동체 의식을
와해시키는 힘으로 작동하기 마련입니다. 상대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계, 공동체의
가치를 의식하지 않는 세계에서 개인들이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범죄 말고는 다른 생계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의무입니다.
이제껏 겪지 못한 새로운 문제들로 인한
공동체의 위기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합리적 토론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는 지적(知的)인 사람, 가난이 인간의
자존감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겪어 본 사람,
무엇보다도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사람이라야, 우리 공동체 앞에 놓인
위기를 앞장서 헤쳐나갈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위기 앞에서 공동체를 저버리고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공동체를
지키며 함께 헤쳐나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이재명에게 투표해야,
나와 내 가족과 내 나라를 함께 지킬 수 있습니다.
|
volee2022_030300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