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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없던 사람]

 

 

이연주

이제까지 없던 사람

그 날은 텅 비고 황망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어. 손에 쥐고 있던 풍선을 놓친 아이처럼.

검찰과 언론의 콜라보로 빚은 광기와 혼돈이 그를 채어 갔다고 원망했지만, 손을 스르르 놓아 버린 건 우리 자신이라는 걸 아프도록 마음에 새길 수 밖에 없었지.

그런데 2003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박경춘 검사가 “83학번이라던데 맞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모욕주기를 시도한 무렵, 검찰 안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그 자리에서 김영종 검사는 취임 전 어느 지청장에게 뇌물사건과 관련해 청탁 전화를 한 적이 있지 않느냐, 왜 전화했느냐고 취조하듯이 캐물었지.

그러나 그 잘난 척 하던 검사들이 안에서는 어쩌고 있었냐는 것이지.

2002년 인천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남의 눈을 피하려고 스폰서들에게 특급호텔의 스위트룸에 식사자리를 마련하게 했어. 그 부장은 위세를 자랑하려고 했던지 그 형사부 소속의 검사들을 모두 그 자리에 참석하게 했지. 참석한 검사들 일부는 부장의 스폰서와 어떻게 엮여질까봐 그 자리가 불쾌했는데, 나중에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기도 했어.

어느 날, 그 부장은 주임검사가 피의자를 구공판으로 기소하겠다고 결재를 올린 사건에 대해서 기소유예의 불기소처분을 하라며 반려했어. 주임검사가 부장실로 찾아가서 기록의 여기 저기 관련된 부분을 들추며 기소함이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자, 몹시 노여워하며 말했지.

“나보고 기록을 보란 말이지”

기록도 안 보고 불기소하라고 지시할 수 있는 데다가, 이걸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놀라운 분들이라니까.

그 부장은 통상 벌금 몇 백만원으로 구약식 처분하는 정도의 사건에 대해서는 주임검사에게 구속기소하라고 지시했지.

주임검사는 이전에 부장검사의 지시대로 구속영장을 치려 했다가 차장검사에게 혼난 적이 있었거든. 차장은 간부인 부장검사를 혼내기는 어려워 주임검사를 불러다가 이 건이 구속사안이냐, 양형감각이 있느냐고 혼줄을 냈어. 근데 이번에는 관할 문제가 이 검사를 고민에서 구해 주었지. 다행히도 안산지청에 관할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거기로 이송을 해버려.

2012년 그 부장은 한직인 서울고검으로 날아가게 되었어. 점심을 같이 하자며 근무연이 있는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을 불러냈는데, 연락을 받고 간 검사들은 깜짝 놀란 거야. 그 부장이 내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어느 저축은행의 임원들이 나와 있었던 거야. 그 저축은행의 회장이 구속되어 있었는데, 그 회장과의 특별면회를 검사실에서 시켜달라고 청탁하려는 게 그 모임의 목적이었지.

니등 네등 서로 가려운 데 긁어주는 검찰의 아름다운 전통은 그 뒤에도 계속 되지.

2013년 천안지청에서의 일이야.

어느 건설회사가 재건축조합에 뇌물을 주고 시공사로 선정돼. 애초에는 직원들만 피의자로 입건되어 있었는데, 수표 추적 결과 뇌물이 회사에서 나온 돈으로 확인되었어. 그래서 주임검사는 재무담당 임원을 입건해서 수사하겠다고 미리 보고를 올렸단 말야.

그런데 지청장이 연수원 동기인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선임되자 태도를 싹 바꾸어 임원에 대해 “내사종결'하라고 종용해. 지청장은 주임검사가 말을 듣지 않자 재배당으로 사건을 빼앗아 갔고, 재배당받은 검사는 지청장의 지시대로 내사종결로 끝냈지.

한편 2003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김병현 검사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이 바라는 것은 검찰을 통제하는 장관이 아니고 검찰을 위해서 외풍을 막아주고 정치인들로부터 보호해주는 장관”이라고 했어.

통제가 미치지 않는 검찰 내부의 모습이 저러니, 이 말은 검찰 자치공화국 안에서 전횡과 부패의 자유를 인정해 달라는 뜻 밖에 안 되는 거지.

혼돈이 잦아든 2009년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썼지.

당신은 자신에게 진실함으로써 가장 품위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없던 전혀 새로운 사람이었고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가슴을 에이는 슬픔은 당신이 열어놓은 그 길을 걸어갈 용기가 됩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