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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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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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남북한 통틀어 최고의 언어학자이자 북한 언어정책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수경의 삶과 학문을 집대성한 평전이다.

나로서는 2년 반을 기다린 책이다. 21년 가을, 한겨레 서평을 보고서 당장 구입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일본어판 출간 서평을 우리말 번역본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일본어판 책이 나오자마자 한국 언론에서 대서특필할 만큼 책 출간의 의미가 컸다. 집필에 8년, 번역에 2년 반의 정성이 들어간 역작이다.

김수경이 누구인가? 우리 현대사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 14개 언어를 구사하고, 이 중 7개 언어는 '직독, 직해, 직강'(直讀, 直解, 直講 )이 가능했던 '언어의 천재'.. 즉 원서를 바로 읽고, 바로 번역하여, 바로 강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천재 언어학자..

북한에서 두음법칙 폐기의 이론적 기초를 제시한 사람, 북한에서 한글 전용 등 문자개혁을 이끈 사람, <조선어 철자법>, <조선어 문법>, <조선어 문체론>의 집필자, 북한 대학의 교과서이자 북한 국어학의 기초가 된 <현대 조선어> 집필자...

한국전쟁 때 미군이 노획한 문서 <김일성대학 교원 서류철>에는 김수경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어학 방면에 가장 우수한 자질이 있고, 선진 각국어에 능통. 언어학 분야에 독보적 존재 ."

김수경은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동경제대 문학부 언어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해방후 46년 8월에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과 교수, 김일성대학 초대 도서관장을 맡았고, 과학원 산하 조선언어학연구소 창설에 기여했다.

58년 김두봉이 숙청 당할 때부터 입지가 어려워진다. 조선어학회 분과위원장 등으로 겨우 연구 활동을 지속했으나 68년 중앙도서관 사서로 좌천된다. 북한에서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가 확립되던 시점이다. 이때부터 연구활동에는 실질적으로 배제된다. 20년간 도서관 사서로 봉직하다가 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학계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시기에 가족이 남과 북으로 생이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김수경은 정치선전원으로 남한에 파견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평양으로 귀환했으나, 아내와 가족들은 오히려 김수경을 찾아 남으로 피난했다가 영영 헤어지고 만 것이다. 가족들은 남한 정보기관의 괴롭힘을 피해 1970년대에 캐나다로 이민을 택했다. 김수경의 아내와 아들, 딸은 조국을 떠난 후에야 남편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1988년 베이징 국제학술토론회에서 딸과 극적으로 재회했다. 1995년 김수경은 뇌졸중을 앓게 되어 점차 건강이 악화되어갔다. 1996년 평양을 방문한 장남 김태정을 만났고, 1998년 7월에는 평양을 찾은 아내 이남재와 재회했다.  50년 한국전쟁 발발로 헤어진 후 48년만이고, 43년 결혼 이후 55년만이었다.

이때 김수경은 재혼을 한 상태였고, 아내 이남재는 평생 남편 김수경과의 재회를 기약하며 혼자서 자녀들을 키워왔다. 이남재는 남편이 북한에서 재혼했다는 친필 서신을 받고 충격에 빠져 가족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상처와 충격을 치유하는 데에 10여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리라. 김수경은 아내를 만나고 일 년여 후인 2000년 3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여기까지가 김수경이란 천재 언어학자의 일생이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월북, 전쟁, 숙청, 재평가 등 20세기 한반도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다 담겨 있다. 김수경의 고민, 사상, 학문적 성취, 가족사의 비극 등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는 떨림과 흥분이 있다. 비극을 헤쳐가는 한 개인과 민족의 삶,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김수경이 스스로 밝힌 자기 인생의 목표..

“인생의 목표는 조선어라는 기계의 작지만 필요한 나사 하나가 되는 것”

김수경과 이남재의 생활신조..
“생활은 소박하게 생각은 고상하게”
(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

이 책은 인류학자이자 코리아 근현대사 연구자인 일본 도시샤대학의 이타카키 류타 교수가 8년에 걸쳐 집필했다.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필자는 이를 ’대위법적 평전‘이라 부르고 있다.  개인-가족-한반도-세계로 이어지는 역사 계열의 서술과 조선어학-언어학사 등 언어학 계열의 서술이 번갈아가면서, 대위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만큼 입체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다. 김수경의 일생을 복원해준 이타카키 류타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